- 행주대첩 영웅 권율장군 출생지, 농기계 창고 및 풀 속에 가려
- 주민, “유물은 사라지고 논두렁 위에 바위만 남아”···역사 보존 손길 절실
- 윤봉길 의사, “호국 영웅에 4만여평 기념공간 조성”
- 선원면 주민 A씨, “역적도 아닌데 논두렁에 방치는 문제있다” 주장
임진왜란 당시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끌며 나라를 지켜낸 조선의 명장 권율 장군.
교과서에서 누구나 한 번쯤 그의 이름을 접했고, '행주대첩'이라는 역사적 승전은 지금도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기록되고 있다.
권율(權慄, 1537~1599)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군인, 정치인으로 본관은 안동이며 자는 언신, 호는 만취당이다.
그는 영의정 권철의 아들이자 조선시대 명재상 오성 이항복의 장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권율 장군을 역사에 남긴 것은 임진왜란에서 보여준 뛰어난 군사적 능력이다.
1593년 음력 2월 12일, 권율 장군은 행주산성에서 약 3천800명의 병력과 백성들을 이끌고 3만여 명의 왜군을 맞아 대승을 거뒀다.
특히 군사뿐 아니라 백성들까지 힘을 합쳐 돌을 나르고 화살을 공급하며 왜군의 공격을 막아낸 행주대첩은 오늘날까지도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승전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이후 권율 장군은 도원수에 올라 조선군을 총지휘하며 임진왜란이 끝날 때까지 왜군과 맞서 싸웠고, 나라를 지켜낸 대표적인 호국 영웅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호국 영웅이 태어난 것으로 전해지는 인천 강화군의 출생지는 오늘날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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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리 712-4번지에는 농기계 조립식 건물 밑에 권율장군 출생지(붉은 원형)를 알리는 바위가 풀 속에 가려있다. <사진제공=중부뉴스> |
중부뉴스 취재진은 지난 27일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 연리 712-4번지를 직접 찾아 현장을 확인했다.
현장에 도착한 취재진이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역사 유적지가 아니라 평범한 농촌 풍경에 불과했다.
논과 밭이 이어진 가운데 언덕에는 조립식 농기계 창고가 자리하고 있었고, 권율 장군의 출생지라는 사실을 알릴 만한 안내시설이나 관리 흔적은 아예 찾아볼 수 없었다.
주변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었으며,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구한 권율장군의 흔적을 찾기 위해 일부러 현장을 방문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이곳이 역사적인 장군의 출생 장소라는 사실을 알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있다.
이러한 역사적 위상과 달리 출생지는 오랜 세월 제대로 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취재진은 현장에서 해당 권율장군 출생지의 토지 소유자인 한모씨를 만나 권율 장군 출생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한씨는 “어릴 적부터 할머니께 권율 장군이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좌측 권율장군 큰 부인 집이 있고, 중간에는 연못이 있고, 우측에도 작은 부인 집이 있는 것까지 상세하게 전해줬다.
그러면서 그는 “예전에는 권씨 문중 사람들이 찾아와 제사를 지내기도 했고, 이곳을 권율장군 출생지로 역사적인 장소로 여기는 사람들이 종종 방문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찾아오는 사람도 거의 없고 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한모씨는 “이곳에는 예전 연못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이 유물들을 훼손할 것을 우려해 당시 이장이었던 권태국 면장이 관련 유물들을 연못 속에 숨겨두었다가 해방이후 다시 꺼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고 했다.
다만 당시 유물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대부분 유실됐다고 현재 남아 있는 흔적은 논두렁 가장자리에 놓여 있는 바위 한 점뿐이라는 것이 한모씨의 설명이다.
이어 한씨는 “언젠가는 권율장군 출생지로 복원이 예상된다”며, 인근에 사는 황모씨도 “새로 짓는 집터를 권율장군 출생지보다 더 위로 지었다”고 전했다.
이렇게 권율장군 출생지에 대해 주민들도 알고 있고 이웃 주민들도 언젠가는 복원될 것을 예상하고 있지만 강화군만 모르고 선원면 연동까지만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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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화군 선원면 연리 712-4번지 권율장군 출생지로 알려진 장소 인근 논두렁 바위에 사람 인(亻) 변과 진(辰) 자가 결합된 한자 '侲(진)'이 새겨져 있다. 취재진이 현장에서 해당 흔적을 찾아내고 있다. <사진제공=중부뉴스> |
선원면에 사는 권모씨도 눈두렁 위에 있는 한자는 “춘천대학교 역사학자 B모 교수가 이 바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사람 인(亻) 변과 진(辰) 자가 결합된 한자 '侲(진)' 인 변은 임금을 뜻하고, 별 진은 임금을 지키는 장수로 새겨진 글자로 해석된다”고 했다.
취재진은 한모씨의 안내를 받아 눈두렁 위에 있는 잡초를 헤치고 권율장군 출생지 표적이 있는 해당 바위를 직접 찾아냈다.
바위는 오랜 세월 비바람을 맞으며 그대로 놓여 있었고, 주변에는 보호시설은 물론 안내판 하나 설치돼 있지 않았다.
현장을 둘러본 결과 권율 장군 출생지라는 흔적은 주민들의 구전과 일부 남아 있는 바위 외에는 사실상 찾아보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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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화군 선원면 연리 712-4번지 권율장군 출생지로 알려진 장소 인근 바위에 새겨진 한자 사람 인(亻) 변과 진(辰) 자가 결합된 글자 '侲(진)'의 모습 <사진제공=중부뉴스> |
취재 과정에서 확인한 결과 강화군 역시 권율 장군과 관련해 선원면 연리 일대가 생가터로만 인지하고 있지만, 출생지에 대한 체계적인 보존사업이나 기념공간 조성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율장군 출생지가 현재 비지정유산(기념관)으로 지방자치법 제14조 및 지방자치법 시행령 제10조에 지방자치단체의 종류별 사무에 의거 시·군·자치구에서 보존관리 하도록 되어있다.
역사학계에서는 권율 장군의 출생지에 대해 여러 기록과 전승이 존재하는 만큼 지속적인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은 최소한 역사적 의미를 알리는 안내판과 기념 공간 정도는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선원면에 거주하는 A씨는 “충남 예산에는 윤봉길 의사 수류탄 하나 던지고 출생지를 중심으로 기념관과 충의사 등을 포함한 약 4만여평 규모의 역사공원이 조성돼 있다”며, “권율 장군 역시 나라를 구한 대표적인 호국 영웅인데 역적 다루듯이 취급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이어 “대규모 공원을 조성하자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문화 가치가 있는 유적을 후대들이 정신을 배우고 기억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기념시설과 안내시설은 갖춰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권율 장군은 행주대첩을 통해 나라를 지켜낸 영웅으로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국민들에게 존경받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가 태어난 것으로 전해지는 장소는 논과 밭 사이에서 표적마저 잡초에 묻힌 채 세월을 견디고 있었다.
역사를 기억하는 일은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 나라를 지킨 선조들의 정신을 전하는 일이다.
권율장군 출생지가 더 늦기 전에 강화군은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체계적인 조사와 보존하여 역사적 문화 가치 기념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재조명할 시점에 왔다.
[중부뉴스] 권중섭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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