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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6/10/16  편집부
고려 충선왕 ‘양자’ 왕후 잠든 파주 하포리···700년 묘역은 왜 문화유산 밖에 있나

- 『고려사』에 독립 열전 남은 왕후···권재에서 충선왕 양자로 입적돼 ‘왕후’ 성명 하사

- 국립문화유산연구원에 1349년 ‘왕후묘지’ 기록···파주 하포리 민통선 내 묘역 전해져

- 국립문화재연구소, 안동권씨 인물인 창하공 권준 묘에서 ‘고려벽화고분’ 발견

 

▲ 지난 11일 파주시 진동면 하포리 민통선 내 선영에서 안동권씨 정헌공 예하 문중이 고려 충선왕의 양자로 입적된 정헌공 왕후(王煦)를 기리는 추향제를 봉행하고 있다. <사진제공=중부뉴스>

 

고려 제26대 충선왕의 양자로 입적돼 왕실 족적에 이름을 올리고 고려 후기 최고위 관직을 지낸 왕후(王煦·1296~1349)의 묘역이 파주시 진동면 하포리 민통선 내에 전해지고 있지만, 현재 국가·경기도 등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돼 체계적인 조사와 문화유산적 가치 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왕후는 본래 안동권씨로 초명은 권재(權載)이며 정승 권부(權溥)의 아들이다.

 

『고려사』 열전에는 왕후의 생애와 행적이 별도로 기록돼 있다. 기록에 따르면 충선왕은 원나라에 있을 당시 권재를 불러 만나본 뒤 자신의 아들로 삼고 ‘왕후(王煦)’라는 성명을 하사해 왕실 족적에 올렸다.

 

이후 왕후는 사헌집의 등을 거쳐 1314년 삼중대광 계림부원군에 봉해졌으며, 1316년에는 부원대군에 봉해졌다. 당시 사람들이 그를 ‘왕제(王弟)’, 즉 왕의 동생이라고 불렀다는 기록도 전한다.

 

왕후는 우정승과 영도첨의사사 등 고려 후기 최고위 관직을 지냈으며 1349년 충정왕 원년에 사망했다. 시호는 정헌(正獻)이다.

 

왕후의 존재와 행적은 종중 기록에만 의존하는 것도 아니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가유산 지식이음에는 1349년 작성된 ‘왕후묘지(王煦墓誌)’가 고려시대 금석문 자료로 등록돼 있다.

 

왕후묘지는 『동문선』 권125에 수록돼 있으며 이인복이 작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해당 자료에는 왕후가 복주, 현재의 안동 출신으로 원래 성은 권씨이고 이름은 재였으며, 충선왕이 그의 성명을 왕후로 고쳤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 자료에서는 이 왕후묘지가 ‘비지정유산’으로 분류돼 있다.

 

안동권씨 관련 문중 자료에서도 왕후를 ‘정헌공 휘 왕후(正獻公 諱 王煦)’로 기록하고 있으며, 파주시 진동면 하포리 일대에 정헌공 묘역이 전해지고 있다.

 

실제 지난 11일 하포리 민통선 내 선영에서는 안동권씨 정헌공 예하 문중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왕후를 기리는 추향제가 봉행됐다. 묘역에는 왕후와 부인 당성 홍씨의 묘비와 봉분 등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왕후 묘역이 위치한 것으로 전해지는 진동면 하포리 일대는 다양한 시대의 역사·문화유산이 분포한 지역이다.

 

같은 진동면 하포리 산129번지에는 조선시대 의학자 허준의 묘가 있으며, 허준 묘는 1992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됐다.

 

또 파주시가 소개하고 있는 하포리 지석묘는 진동면 하포리 417번지에 위치하며 청동기시대 임진강 유역의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는 역사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처럼 하포리 일대에는 선사시대부터 고려·조선시대에 이르는 역사유산이 분포하고 있지만, 고려 후기 정치사의 주요 인물 가운데 한 명인 왕후의 묘역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알려진 내용이 많지 않다.

 

더욱이 왕후는 단순한 고려시대 관료가 아니라 충선왕이 직접 양자로 삼아 왕씨 성과 이름을 하사하고 왕실 족적에 올린 인물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특수성을 갖는다.

 

『고려사』에 왕후에 대한 독립된 열전이 존재하고 1349년 작성된 묘지명 내용까지 전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왕후 묘역에 대한 체계적인 학술조사를 실시하고 역사·문화유산으로 보존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파주에서는 고려시대 묘역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역사적 가치가 뒤늦게 확인된 사례가 있어 왕후 묘역에 대한 조사 필요성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

 

창화공(昌和公) 권준(權準·1281~1352)의 묘는 파주시 진동면 서곡리 민간인통제선 내에 위치해 있다. 이 묘는 오랫동안 청주 한씨 문중에서 조선 초기 문신 한상질의 묘로 알려져 관리돼 왔으나, 1991년 1월 도굴 사건이 발생하면서 관계 당국에 신고됐고 이를 계기로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발굴조사가 진행됐다.

 

조사 과정에서 출토된 묘지석 등을 통해 무덤의 실제 주인공이 고려 후기 문신인 권준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묘역을 둘러싼 안동권씨와 청주 한씨 문중 간의 소송을 거쳐 안동권씨 문중의 묘역으로 확인된 것으로 전해진다.

 

▲ 파주시 진동면 서곡리 고려벽화고분에서 확인된 인물상 벽화. 이 고분은 오랫동안 조선 초기 문신 한상질의 묘로 알려졌으나, 1991년 발굴조사 과정에서 묘지석 등이 확인되면서 고려 후기 문신 권준의 묘로 밝혀졌다. <사진제공=국립문화유산연구원>


특히 권준의 묘에서는 고려시대 벽화가 확인돼 현재 ‘파주 서곡리 고려벽화고분’으로 불리고 있으며, 국내에서 보기 드문 고려시대 벽화고분이라는 점에서 역사·미술사·고고학적 가치가 높은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같은 사례는 파주 민통선 일대에 분포한 고려시대 묘역이 단순한 문중 선산을 넘어 중요한 역사·문화유산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에 따라 왕후 묘역 역시 현존 봉분과 석물의 조성 시기, 묘역의 원형 보존 여부, 문헌 및 금석문 기록과의 연관성 등을 종합적으로 조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문화유산 지정 여부는 해당 인물의 역사적 유명세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유적의 진정성과 역사성, 학술성, 희소성, 보존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조사하고 전문가 검토와 관련 절차를 거쳐 판단해야 한다.

 

따라서 우선 현존 묘역과 『고려사』, ‘왕후묘지’ 등 문헌자료를 대조하고 묘역 내 봉분과 석물 등의 조성 시기를 확인하는 학술적 기초조사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

 

조사를 통해 왕후 묘역의 역사·문화유산적 가치가 확인될 경우 파주시 향토문화유산을 비롯해 경기도 문화유산 또는 국가유산 지정·등록 대상에 해당하는지 단계적인 검토가 이뤄질 수 있을지도 관심을 모은다.

 

왕후 묘역 주변에는 허준 묘를 비롯해 제3땅굴, 도라전망대, 덕진산성, 통일촌, 해마루촌 등 역사·안보·관광자원이 분포하고 있다.

 

이에 따라 묘역의 역사적 실체와 가치가 객관적인 조사로 확인될 경우 기존 DMZ 관광자원과 고려시대 역사문화자원을 연계한 새로운 역사문화 탐방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장기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

 

무엇보다 7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파주 하포리에 전해져 온 왕후 묘역의 역사적 실체와 보존가치를 객관적인 자료와 전문적인 조사를 통해 확인하는 작업이 우선돼야 한다.

 

고려 충선왕의 양자로 왕실 족적에 이름을 올리고 『고려사』에 별도의 열전까지 남긴 왕후. 그의 묘역이 지닌 역사·학술적 가치는 어느 정도인지, 파주시의 검토를 시작으로 경기도와 관계 전문기관 차원의 본격적인 조사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중부뉴스] 김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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