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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6/06/01  편집부
서울특별시, 권율 장군‧이순신 장군 도로가 생가터 표석만 남겨 놓아

- 강감찬·권율·이순신 모두 서울 출신 명장…기념사업에 큰 차이 보여

- 딜쿠샤 부부는 수없이 복원·보존 국가문화유산 등록…바로 옆 권율 장군 생가터 도로에 표석만 남아

- 역사적 가치 고려한 체계적 보존·기념사업 필요성 제기

 

서울특별시의 역사문화유산 관리가 형평성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서울특별시를 대표하는 역사적 인물로 꼽히는 강감찬 장군, 권율 장군, 이순신 장군 가운데 강감찬 장군 공원 조성, 이순신 장군 기념관 건립에 나서고 있는 반면, 권율 장군 생가터는 사실상 표석만 표시 논란이 되고 있다.

 

▲ 서울 종로구 행촌동에 위치한 권율 장군 생가터 표석. 임진왜란 당시 행주대첩과 독산성 전투 등을 승리로 이끈 권율 장군의 출생지로 알려져 있으나 현재는 표석만 설치된 채 별도의 기념시설 없이 관리되고 있다. <사진제공=중부뉴스>


서울특별시 출신 역대 명장들 중에 고려의 명장인 강감찬(948~1031)은 서울 관악구 낙성대로 77번지 일대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의 문관 출신이었던 그는 과거에 급제한 뒤 학자로 활동하다가 70세에 총사령관에 올라 뛰어난 전략과 지략으로 거란군 10만 대군을 격파했다. 특히 귀주대첩은 우리 역사상 3대 대첩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서울특별시는 1973년부터 낙성대 생가터 일대에 공원을 조성해 관리하고 있으며, 3층 석탑과 약 3㎞ 규모의 산책로 등을 갖춰 시민들의 역사 교육과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반면 조선시대 명장 권율(1537~1599)은 서울 종로구 행촌동 1-18번지에서 태어났지만 생가터에는 현재 도로로 잡혀있으며 표석만 남아 있다.

 

권율 장군은 문신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전략과 리더십으로 임진왜란 당시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다.

 

당시 약 2300명의 군사와 승병, 의병, 부녀자들이 힘을 합쳐 왜군의 대규모 공격을 막아내며 임진왜란 3대 대첩 가운데 하나를 기록했다.


▲ 서울 중구 인현동 충무공 이순신 장군 생가터. 서울시는 이순신 장군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지만 현재 출생지에는 표석만 설치돼 있다. <사진제공=중부뉴스>

 

또한 독산성 전투와 이치대첩에서도 승리를 거두며 조선군 최고 지휘관인 도원수에 임명되는 등 조선을 대표하는 명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순신(1545~1598) 역시 서울 중구 인현동 32-2번지에서 태어난 인물이다. 그는 임진왜란 당시 한산도대첩, 명량대첩,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특히 1597년 명량해전에서는 13척의 조선 수군으로 130여 척에 달하는 왜군 함대를 상대로 대승을 거둬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겼다.

 

하지만 이들 세 명장 가운데 강감찬 장군을 제외한 권율 장군과 이순신 장군의 출생지는 현재 개인 소유 건물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표석에는 도로로 잡혀있다.

 

그나마 서울시는 이순신 장군 같은 경우에는 기념관 건립 계획을 추진하고 있지만, 권율 장군은 기념관 건립 계획은 아직 구체적으로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 서울 종로구 행촌동 국가등록문화유산 ‘딜쿠샤’ 전경. 서울시와 관계 기관은 딜쿠샤에 대해 수차례 보수·복원 사업과 원형 재현 작업을 진행하고 예산을 투입해 역사문화 공간으로 조성했지만, 바로 인근에 위치한 권율 장군 생가터는 표석 외 별다른 기념사업이 이뤄지지 않아 대조를 보이고 있다. <사진제공=중부뉴스>


특히 권율 장군 생가터 바로 옆에 위치한 딜쿠샤(종로구 사직로2길 14)는 2016년 기획재정부와 서울특별시, 문화재청이 업무협약을 체결해 문화재로 등록했으며, 2018년부터 원형 복원 사업을 진행해 2020년 복원을 완료했다.

 

딜쿠샤는 미국인 언론인 겸 사업가인 앨버트 테일러 부부가 살던 집으로 앨버트 테일러는 1919년 3·1 운동 당시 독립선언서 내용을 해외에 전달해 세계 언론에 알리는 데 기여했고, 일제의 제암리 학살 사건도 해외에 알린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딜쿠샤 내부에는 서울특별시가 테일러 부부가 거주하던 당시의 생활 공간이 재현돼 있으며, 지속적인 보수와 관리를 해오고 있다.

 

반면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행주대첩과 독산성 전투 등에서 승리를 이끌며 조선을 지켜낸 권율 장군의 생가터는 표석만 남아 있을 뿐 체계적인 기념관 건립 등 복원이나 기념사업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중구에 사는 A모씨는 “서울특별시가 나라를 위해 큰 공을 세운 장군들에게 도로에 생가를 표석으로만 설치는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B모씨는 “민간 건물에 대해서는 문화재 가치가 있다며 수차례 보수해주고 반면 나라를 지킨 영웅들에게는 소홀히 하고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고 했다.

 

서울을 대표하는 역사 인물에 대한 기념사업이 특정 인물에만 집중될 것이 아니라 역사적 가치와 시민 교육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균형 있게 추진될 필요가 있다며, 특히 권율 장군 생가터 역시 기념관 건립 등으로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중부뉴스] 권중섭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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