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2년 헌종 왕명으로 권율 장군 전공·충절 기리기 위해 건립···출발은 ‘기공사’
- 당초 권율 장군 단독 배향했지만 2008년부터 행주대첩 공신 6위 추가···현재 7위 함께 배향
- 추향제 제례 격식·배향 위계부터 교육·문화체험 활용까지···원형 취지와 현재 운영 기준 점검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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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주서원은 1842년 왕명으로 권율 장군의 전공과 충절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기공사에서 출발했지만, 현재는 배향 대상과 활용 방식이 달라지면서 당초 취지가 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제공=중부뉴스AI> |
조선시대 향교와 서원은 모두 교육과 제향의 기능을 가졌지만 출발부터 성격이 달랐다.
향교는 국가가 지방에 설치한 공립 교육기관으로 유생들에게 유학을 가르치고 공자와 유교 성현을 제향했다. 반면 서원은 주로 지방 유림이 설립해 후학을 교육하면서 특정 학자나 충신 등을 배향했던 사립 교육·제향기관이다.
그러나 고양특례시 행주서원의 출발은 일반적인 서원과는 다소 달랐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기리기 위해 1706년 사당을 세우고 이듬해 숙종이 ‘현충사’라는 이름을 내린 것처럼, 권율 장군 역시 그의 전공과 충절을 기리기 위한 사당에서 출발했다.
고양특례시 공식 자료에 따르면 행주서원의 기원은 1842년 헌종 8년 왕명으로 건립된 ‘기공사(紀功祠)’다.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충장공 권율 장군의 전공을 기리고 호국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당시 영의정 조인영이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의 공을 아뢰며 사당 건립을 청했고 헌종이 이를 받아들여 사당을 건립하도록 했다.
즉, 행주서원의 뿌리는 처음부터 일반적인 교육기관이 아니라 권율 장군의 무공과 충절을 기리기 위해 왕명으로 세운 기공사였던 것이다.
이후 기공사는 후학을 가르치는 기능이 더해지면서 행주서원으로 불리게 됐지만, 중심에는 여전히 권율 장군에 대한 제향이 자리하고 있었다.
문제는 세월이 흐르면서 배향 대상과 활용 범위가 크게 또 확대되면서 문화적 가치가 훼손되고 있다는 점이다.
고양특례시에 따르면 당초 기공사에는 권율 장군만 배향했으나 2008년부터 행주대첩 당시 함께 싸웠던 선거이·조경·변이중·이빈·정걸·처영 등 6명의 위패를 추가로 모시면서 현재는 권율 장군을 포함해 모두 7위를 배향하고 있다.
그렇다면 행주대첩이 권율 장군 혼자만의 승리가 아니라 군사와 의병, 승병 등 수많은 이들이 힘을 모아 이룬 역사적 승리였다는 점에서 함께 싸운 인물들의 공적을 기리는 것 자체에는 충분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왕명으로 권율 장군을 위해 건립된 기공사에 다른 인물들을 추가 배향하게 된 역사적·제례적 근거와 그 과정이 충분했는지는 별도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지난 10월 25일 행주서원에서 열린 추향제에서도 이 같은 문제가 다시 제기되고 있다.
현재 추향제에서는 권율 장군뿐 아니라 추가로 배향된 6위에 대해서도 관련 종친회 등이 참여해 제례를 진행하고 있다.
여기서 짚어볼 부분은 단순히 “누구를 함께 모시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1842년 왕명으로 권율 장군의 전공과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기공사라는 역사적 출발점을 고려할 때 주향인 권율 장군과 이후 추가 배향된 6위의 제례 순서와 위계, 헌관 구성 및 절차가 전통 제례의 격식에 맞게 구분되고 있는지 객관적인 고증과 검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권율 장군과 추가 배향된 6위를 사실상 동일한 방식으로 제향하고 있다면 그것이 행주서원의 역사적 연혁과 전통 제례 기준에 부합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이는 추가 배향된 장수들의 공을 낮추자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행주대첩에 참여한 장수와 승병, 백성의 공을 제대로 기리면서도 기공사가 누구를 위해, 어떤 목적으로 건립됐는지 그 역사적 정체성 역시 분명히 해야 한다는 취지다.
행주서원의 공간 활용 문제도 함께 짚어볼 대목이다.
고양특례시는 현재 행주서원 일부 공간에서 문화체험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서원이 역사적으로 견학 기능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교육 프로그램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
그러나 행주서원의 출발점이 권율 장군의 충절과 전공을 기리기 위해 왕명으로 건립된 위패 기공사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면 행주서원이 아닌 행주산성에서 어린이 등을 대상으로 한 각종 교육·체험 프로그램 역시 문화유산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충분히 살리는 방향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단순한 체험·교육 공간으로 활용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왜 이곳에 기공사가 세워졌는가”, “왜 헌종이 권율 장군을 위해 사당 건립을 명했는가”, “행주대첩과 권율 장군의 역사적 의미는 무엇인가”를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행주서원 교육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고양에는 권율 장군을 모시는 또 다른 사당인 행주산성 내 ‘충장사’가 있다. 충장사는 1970년에 건립됐으며 현재도 권율 장군 한 분만 모시고 있다. 반면 복원된 행주서원 기공사에는 권율 장군과 함께 6위가 추가 배향돼 있다.
결국 같은 권율 장군을 기리는 두 사당이지만 현재 배향 방식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는 셈이다.
1842년 왕명으로 권율 장군의 전공과 충절을 기리기 위해 출발한 기공사가 180여 년의 세월을 지나면서 어떤 근거와 과정을 거쳐 현재의 행주서원이 됐고, 2008년에는 어떤 역사적·제례적 검토를 거쳐 6위를 추가 배향하게 됐는지 이제는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다.
또 추향제에서 주향인 권율 장군과 추가 배향된 6위의 위계와 제례 절차는 어떻게 정립돼 있는지, 현재의 제례 방식이 전통적인 향사 규범과 역사적 고증에 부합하는지도 전문가 검증이 필요해 보인다.
문화유산은 단순히 오래된 건물을 보존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행주대첩의 영웅 권율 장군을 위해 왕명으로 세워진 기공사의 역사적 정체성을 지키면서 함께 싸운 장수와 승병, 백성의 공까지 올바르게 기억하는 것, 그것이 행주서원이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로 보인다.
[중부뉴스] 김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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