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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6/04/20  편집부
밀양손씨 2026년도 시조 문효공 춘향제 봉행…전국 종인 한자리에

– 경주 문효사서 전통 제례 엄숙히 거행

– 각 문파 참여 속 배향 집행…종친 화합 의미 더해

– 효 사상 계승 다짐…문중 발전과 소통 강화 강조

 

▲ 문효사 앞에서 밀양손씨 종친들이 2026년도 시조 문효공 춘향제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밀양손씨 중앙종친회)

 

2026년 4월 19일 일요일(음력 3월3일) 11시30분 경주시 현곡면 소현리 623번지 소재 문효사에서 시조 문효공 춘향제가 실시되어 초헌관으로 밀양 손남호 중앙종친회장이 맡았으며, 아현관으로 평해손씨 손억조.(경북 울진군 평해출신) 종헌관으로는 경주손씨 손진락 (경주출신)이 맡았고 대축은 평해손씨 손응원, 집례는 손순호(평해손씨)가 맡았다.

 

문효공 춘향제는 유일하게 각 문파가 참여하여 배향을 모시는 집행관을 나누어 직을 맡아 진행시키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밀양손씨 중앙종친회 손남호 회장은 각 문파의 수장들이 모여 배향을 하고 있는만큼 각 문파가 추구하는 방향은 약간씩 다를수 있지만 시조를 모시는 것은 같아 춘향제를 할때는 함께한다는 사실에 이번은 특별하다며 시조의 음덕을 기렸다.

 

▲ 경주 문효사 경내에서 열린 2026년도 시조 문효공 춘향제에서 종인들이 제례에 앞서 엄숙한 자세로 참여하고 있다. (사진제공=밀양손씨 중앙종친회)

 

밀양손씨 종앙 종친회 손남호회장은 “2026년도 문효공 춘향제에 초헌관으로 임명되어 배향하면서 전국 최고의 명문 세가인 밀양손씨의 자긍심으로 문중 발전에 노력하고 충효 사상이 근본으로 대대손손 내려오는 전통을 살려 문중 발전에 기여하자고 참석한 종인들에게 부탁한다면서 인사를 하고 전국의 종인들과 소통강화에 힘쓰겠다고 하였다.

 

천년의 정취를 풍기는 울창한 고목(古木)들이 빼곡이 들어서 만고(萬古)의 효자 문효공 할아버지의 득석종(得石鐘)의 사실을 피부로 느끼며 참배하는 후손들의 할아버지에 대한 숭모(崇慕)의 정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문효사는 밀평경(密平慶) 3파의 자손들이 성금(誠金)을 모아 1997년 준공(竣工)하여 춘향제(春享祭)에 전국에서 모여든 후손들이 향화(香火)를 올린다.

 

▲ 2026년도 시조 문효공 춘향제에서 초헌관을 비롯한 제관들이 제례를 앞두고 정렬해 엄숙한 분위기 속에 예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제공=밀양손씨 중앙종친회)

 

시조께서는 휘(諱)는 순(順)이요 자(字)는 사구(士久)이시니 신라(新羅) 모량부(牟梁部) 사람 태자사인(太子舍人) 휘 학산(鶴山)의 아드님이다. 그리고 우잠태수(牛岑太守) 백영(白永)의 따님에게 장가들어 취향산(醉香山) 밑에서 살으셨다. 일찍이 부친이 돌아가시고 가세(家勢)가 빈곤해지자 아내와 같이 품을 팔아서 어머님 운오(運烏)를 극진히 봉양하였다.

 

시조께서는 어린아이가 하나 있어 노모(老母)에게 드리는 음식을 매번 빼앗아 먹으니(每奪母食) 매우 민망하였다. 이에 백씨부인(白氏夫人)에게 의논하여 아해(兒孩)를 땅에 묻어버리고 효도(孝道)의 본분(本分)을 다하고자 한다고 하니 부군(夫君)의 뜻을 따르겠다고 하였다. 아이를 업고 취향산 북쪽 기슭으로 가서 땅을 파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삽 끝에 옥석(玉石) 소리가 나서 공(公)이 이상히 여겨 주위를 두루 파니 둥근 옥돌이었다. 석종이었다. 시험삼아 두드리니 소리가 매우 아름다웠다. 백씨부인이 말하기를 “아이를 묻으려다 이것을 얻었으니 이것은 아들의 복이라 묻지 맙시다.” 했다. 공이 옳게 여겨 아이를 업고 종(鐘)을 가지고 귀가하여 대들보에 매달고 두드려 보았다.

 

▲ 문효사 내부에서 열린 2026년도 시조 문효공 춘향제에서 제관이 제례 절차에 따라 향을 올리며 엄숙히 예를 올리고 있다. (사진제공=밀양손씨 중앙종친회)

 

아름다운 종(鐘)소리가 왕궁(王宮)까지 들리었다. 왕(王)이 좌우(左右)에게 이르기를 서(西)쪽에 이상한 종(鐘)소리가 들리니 찾아 알아보라 하여 집을 물어 찾아가 말하여 공(公)이 종(鐘)을 보여주자 신하들이 이를 왕에게 보고하자 가지고 와보라하여 공은 종을 가지고 왕궁(王宮)으로 가서 자초지종을 보고하였다.

 

왕이 내관(內官)에게 두드려보라 하고 이르기를 어떻게 이 석종(石鍾)을 얻게 되었는가? 하자 공(公)이 사유를 말한즉 왕이 말하기를 “기이(奇異)한 일이로다 곽거는 아들을 묻으려다 금솥을 얻었다더니 손순은 석종을 얻었으니 이것은 하늘의 뜻이로다.” 하고 명하여 종은 악부(樂府)에 소장하고 집 한채와 세급미(歲給米) 50석을 주게 하고 또 높은 벼슬을 내렸다.

 

이 때가 통일신라(統一新羅) 흥덕왕(興德王) 10년 을묘(乙卯) 서기 835년이다. 그리고 후에 월성군(月城君)에 봉(封)하고 돌아가신 후 묘(墓)는 모량촌(牟梁村) 앞에 있다. 사람들이 이 묘를 효자릉(孝子陵)이라 명명하였다. 이처럼 우리의 시조께서는 신라의 왕으로부터 효자로 칭하는 녹봉과 벼슬을 받아 후세의 밀양손씨라는 명문 문중이 시조가 된 것이다.

 

[중부뉴스] 김효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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